100일간의 기록

#32 달래 캐기

mercysky 2021. 4. 10. 23:37

어젯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는 생각에 졸음을 참고 늦게 잤다. 아침에 피곤했지만 졸린 눈을 비벼가며 몸을 일으킨다. 점심으로 달래 된장찌개를 해 먹기 위해서다. 호미와 봉지를 들고 달래를 캐러 뒷산으로 나선다. 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길쭉한 이파리는 보호색으로 자신을 감추고 이름 모를 잡초들 사이에 많이도 숨어있었다. 직접 달래를 캐보는 건 처음인지라 다른 잡초들 사이에서 달래만 내 레이더망에 걸리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른 풀들의 뿌리는 상하지 않게 흙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들어서, 달래 뿌리를 발견하면 살살 흔들어 뽑는다. 조그마한 쪽파처럼 생기기도 한 것이 땅속에서 쏙쏙 나올 때면 귀여워 보인다. 쭈그려 앉아 산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살피고 다니니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팠다.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흙도 만지고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어오니까 몸과 마음이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자연의 덕을 봤으니 어린 달래는 캐지 않고 어느 정도 먹을 만치만 캐고 흙을 툭툭 턴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날씨도 따듯하고 벚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남은 힘을 다해서 한 시간 정도 산책도 했다. 벚꽃길을 통제하고 있어서 사람도 없고 무척 평화로운 오전이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삼겹살에 달래 된장찌개와 달래장이다. 각종 쌈 채소와 달래 무침, 버섯, 고추, 양파, 방금 막 지은 잡곡밥, 잘 익은 김치까지. 돗자리를 펴고 버너를 가져와서 앞마당에서 먹기로 한다. 달래를 캐는 일보다 손질하는 일이 인내의 시간이었지만 결국 모든 준비가 다 됐다. 앵두나무 바로 밑, 옆으로는 노란 개나리가 즐비한 곳에 한 상 가득 차렸다. 이 좋은 날에 한국식 상차림을 보면서 삼겹살 굽는 냄새를 맡으니 채식주의자는 못 되겠다고 생각한다.
마치 캠핑온 것처럼 자연과 더불어 정성스러운 식사를 한다. 하루를 알차고 재밌게 보냈다. 다 먹고 그 자리에서 낮잠도 자고 일상이 여행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환경스페셜 같은 다큐멘터리와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를 한 편 봤다. 이렇게 주말에 충전을 잘해야 평일 이 에너지를 끌어다 쓸 수 있다. 완벽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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