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늘 내게 여우라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늘 혼자만의 방에 틀어박혀 내 세상이 제일 중요했다. 그에 반해 언니는 장녀의 숙명을 거부하지도 못한 채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고, 최대 수혜자는 항상 나였다. 나는 원래 마음이 여리고 예민한 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격한 운동을 오래 했다. 운동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무척 혼이 났기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며 강하게 자라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에는 가족들이랑 있으면 마음에 일렁이는 무엇과 약간 오그라드는, 그리고 어떤 먹먹함과 허무 같은 게 밀려올 때면 나는 황급히 자리를 뜨곤 했다. 사춘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불안과 갈등의 요소가 보이면 나는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있는 힘껏 외부의 것들을 막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가족들이 나를 여우 취급하는 게 편했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도 없고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마냥 내 편한대로 살면 될 테니 말이다. 나는 집 안에서는 시니컬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고 혼자가 더 편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가족의 울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잘 아는 상태였고 하룻강아지인 나의 그래프는 그들과 달리 늘 다른 곡선을 그렸다. 엄마는 같은 여자이기도 하고 대화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아빠한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그게 지금 와서는 제일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아빠는 정말 성실하신 분이다. 술을 드셔도 과음하지 않고 담배도 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가까워도 돈과 약속에 관한 것은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시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그래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아껴가며 정말 성실하게 사셨다. 순박한 시골 남자, 많은 아버지가 그렇듯 말로 하는 표현은 서툴러도 행동으로 진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멋진 분이시다. 섬세하고 꼼꼼하시며 유머러스한데 요리도 잘하신다. 감사할 게 너무 많지만 다 적다 보면 너무 슬퍼지기에 나는 가볍게 쓰기로 한다.
집안 사정이 어떤지, 부모님의 사정이 어떤지도 잘 모를 때라 어린 마음에 용돈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해 속상한 마음이 컸던 지난날의 모습이 부끄럽다. 전형적인 철없는 사춘기 소녀였다. 아빠 말대로 여우라서 크게 사고 친 적도 없었지만, 심적으로 높은 벽을 쌓아가던 시기가 아쉽기만 하다. 성인이 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후 마음의 짐이 덜어지니 이제야 있는 그대로 보인다. 아빠의 낡은 운동화 뒷굽이, 꽤 오래전 생신 선물로 사 드린 너덜너덜한 지갑이, 거칠고 투박한 두꺼비 같은 손이, 이마 사이로 지나가는 세월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보여서 나는 글을 하염없이 우리의 역사 속으로 끌고 갈 수가 없다. 아직은 내가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아마 내가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여우짓을 하는 거까지 다 알고 계셨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편하고 유리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일부러 방문을 닫고 들어간 것도, 왜 그랬는지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빠는 다 알면서도 나를 품고 또 품으셨다. 햇빛이 쨍쨍한 무더위 속, 아빠의 그늘에서 나와 시원하게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다. 당연하게 주어진 것 없었지만 그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인 이기적인 한 소녀가 서 있다. 해를 바라보고 있는 그 소녀 뒤에는 그늘 대신 그림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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