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고장 나서 우리는 한 시간을 걸어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산책 겸 비 온 뒤 흐린 날씨를 만끽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 듯하여.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식당 주변에는 문화재가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500년이 훨씬 넘은 나무 두 그루가 있다. 바로 앞에는 바다가 보이고 논과 밭과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 그런 터전을 지키는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있는 곳이다.
그런데 한 나무는 태풍 링링이 오던 때, 강한 바람을 못 견뎌 기둥부터 처참히 부서졌다고 한다. 둘레는 4.5m, 수고는 22m나 되는 느티나무다. 두 사람의 품으로도 절대 안지 못하는 나무 기둥이 박살이 나 버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인간임을 다시 깨닫는다. 500년이 넘는 시간이면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을 다 겪은 시간인데 너무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가 바람에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상상이 안 갔다.
옆에서 쫑알거리며 연신 놀라는 나를 보며 그는 내게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고 한다. 마디가 있는 건 알겠는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아 듣고 있었다.
대나무가 태풍 같은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란다. 유연하게 휘어질지언정 부서지지는 않는다고(대나무가 사실은 나무가 아니고, 나이테가 없는, 공강 부에 관한 내용 등은 생략한다). 이어서 사람에게도 마디가 있단다. 나는 당연한 소리라며 손가락과 팔과 여기저기를 내보인다. 그러자 그는 사람에게 마디는 '휴식'이라 했다. 잘 쉬어야지 유연하게 강한 바람에도 부서지지 않는 거라면서.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사람에게 마디는 휴식이라. 마디는 휴식이라.
세상엔 여러 종류의 마디가 있다. 인체의 관절이 될 수도 있고, 곡에서는 구절이 될 수도 있고, 줄기의 어느 부분이 될 수도 있고, 메시지로써 말 한마디도 될 수 있다. 어쨌든 둘 사이의 맞닿아 있는 부분은 모두 쉼이 필요하다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휴식이 있어야 모든 마디가 부드럽게 연결해 줄 수 있는 거고 그게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자신을 지탱해줄 거라 해석했다. 휴식이 없는 마디는 여유가 없으니 제 기능을 잘하지 못 할 것이라고. 그래서 마디는 휴식인 거라고.
그 한마디에 나는 오늘 모든 마디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하고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사람에게 마디는 휴식이라면 나는 꽤 튼튼하고 여유 있는 마디를 가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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