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기록

#5 난 사실 무릎팍도사가 아닌데

mercysky 2021. 3. 14. 23:21

나만 보면 정리되지 않는 물음표들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나를 종종 무릎팍 도사라 부른다. 세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스스로 답은 찾지 못해 늘 내 의견을 묻곤 한다. 그녀는 나와 대화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돌아오고 그래서 아! 하고 깨달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최대 장점은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타인을 설득시키고 수긍하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그녀와 먼 허공에 골고루 시선을 분배하고 겸허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진심은 비언어적인 요소들에 더욱 잘 들킬 때가 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지 등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어도 다 알아챈다. 내 경험상 배울 게 없는 사람이나 대화는 없다. 단지 나의 관점에서 가치 판단을 내릴 뿐, 잠깐 그 시선을 거두면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나도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알아갈 때도 있다. 평소에는 스스로가 사유의 깊이를 가늠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됨으로 그 깊이를 측정해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을 때 내가 똑바로 나로서 서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그녀에게 하는 말은 과거 혹은 현재의 내게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다. 정말이지 매우 모순적이다. 내 고민보다 남의 고민이 뚜렷하게 잘 보이는 건.
어쩌면 난 행복한 이기주의자 혹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계속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