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순간

마침표

mercysky 2023. 12. 11. 01:40


나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이들과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내가 지켜내고 싶은 꿈 중의 하나다.

그런데 종종 이들의 질투나 기대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때가 있다. 규칙적으로 생의 좌절을 맛보게 하는 수준에 이르면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지한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서기를 반복, 이해, 설명, 해명, 사과 등 뭐라도 다 해본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피하기 방법을 쓴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한다.
슬프게도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본인의 틀이 확고하고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 상대가 본인의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불안감을 심하게 느낀다든지, 아니면 화나 분노를 과하게 표출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 상대가 나일 때는 나는 되게 별로인 이기적인 인간으로 전락하며 죄책감은 덤으로 얻는다. 살다 보니 아리송하면서 개운하지 않은 찝찝한 기분에 반복적으로, 자주, 꽤 오랜 시간 압도당했다. 어느 지점이 정확히 어떻게 불편한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었다. 다들 그렇게 사나보다 하고 누르고 넘어가는 그런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아팠다. 그게 나의 신체 건강에까지 조금씩 영향을 미친다는 게 느껴졌다. 서서히 시들어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나를 참게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에서 극 중 이진욱이 수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너를 너무 서슴없이 망쳐.”
나는 이 대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족, 친구, 애인, 직장 동료, 사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포함한 ‘관계’에서, 나는 나를 얼마나 망치고 살았는지 불현듯 과거의 내가 가여워졌다. 어떻게 망치고 살았는지 스스로는 제일 잘 아니까. 누군가는 말로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기도 해서 그 지옥이 내게 합당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아무쪼록 느리게 깨달아가며 나는 비로소 불편한 지점들이 하나둘씩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존중과 예의가 없는 관계는 폭력적이라 잘라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와 대비되게 누군가는 말로 사람을 늘 천국에 있게 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사랑받아야 마땅하고 객관적으로도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하는 누군가 덕분에 말이다. 그래서 내겐 되도록 마주치지 않게 멀리 피하고 싶은 사람과 어떻게든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충분했다. 그게 상처든, 싸움이든, 사과든, 이해든 모든 것이 넘쳐서 후회는 없다. 늘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내려 했고 정말 애썼다. 방법이 달랐던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다른 거뿐이라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오늘부로 불편한 감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게 뭐가 됐든 더 이상 나는 나를 망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