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기록
#23 글의 온도 차
mercysky
2021. 4. 1. 23:51
출근 전 기분이 좋을 때 쓰는 글과 퇴근 후 기분이 안 좋을 때 쓰는 글 사이의 온도 차가 크다. 내가 나열한 단어들만 봐도 그렇다. 낮에는 희망적인, 긍정적인, 즐거운, 적극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퇴근 후 돌아오면 무거운, 어두운, 쓸쓸한, 속상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전자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줄 것 같은 따듯한 허브차 느낌이라면 후자는 다 식고 불순물이 조금 떠다니는 커피 같달까. 액체 표면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먼지들이 눈에 너무 잘 보여서 선뜻 마시기에는 망설여지는, 그런 글과 표현으로 나는 한참을 깜박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다. 결국, 말하고 싶었던 주제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 채 커피 표면 위의 나의 드리워진 그림자 속으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간다. 눈 딱 감고 한 모금만 마시고 싶은데 자기검열과 의심으로 그마저도 포기하고 목말라한다. 이런 날이 반복되더라도 나는 내가 매일 한 자라도 글을 썼으면 좋겠다. 이런 날에는 내가 글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나의 글이 나를 끌고 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그저 써지는 대로 따라가도 괜찮지 않을까. 의도하지 않은 오늘 같은 글이 어쩌면 제일 솔직한 나의 심정일 테니까. 심정은 의도될 수도 있고 의도될 수도 없는 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