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기록

#14 버림

mercysky 2021. 3. 23. 23:55

채움보다 버림이 더 어렵다 나는.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채운다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복수 선택이 가능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알면 고민할 필요 없이 다 선택하면 되니까. 그런데 버린다는 건 꼭 지금 해야 탈이 안 난다. 관계를 정리하고 공간을 정리하는 일이 더욱 그렇다. 하물며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다가 냉장고 채우는 일보다 음식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곧 상할 것 같은 음식, 상한 음식의 순서를 매기며 비워내는 일이 더 어렵다. 그리고 소재에 맞게 재활용까지 해야 하니.
버린다는 건 한 움큼의 모래를 퍼다가 채로 걸러 돌멩이같이 딱딱한 불순물들을 솎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게 내게 왜 필요가 없는지, 그러는 동시에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다. 그렇게 채로 거르고 거르는 일은 머리 속에서 두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 더 어려울 수밖에. 그리고 하나 더, 버린 건 ‘과감하게 잊기’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단력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가혹하지만 필수 불가결한 행위, 버림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