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8 방황
정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쉬고 싶은 날이 있다. 정신과 육체의 시스템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은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렇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했다.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며 울고 웃었다. 올해 처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운동도 하지 않았고 친한 친구의 부탁도 미안하지만 거절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과는 반하여 눈치를 보고 절제하고 인내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게 나중에는 내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중은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건 무엇이길래 나는 요즘 이리도 방황하는 것일까.
계절 탓이라 하기에는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계절이고, 기분 탓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깊은 감정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미숙한 시절이 있는 것인데, 왜 이토록 과거를 용서하며 사는 게 어려운 것일까. 너(사람을 포함한 과거의 모든 사건, 상황)는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나의 어떤 욕심이 나를 계속 참게 내버려 뒀을까.
찬란했지만 천장만 봐도 눈물 나는 20대의 여름이 지나간다. 슬플 때 더 많이 성장했던 나는 유독 여름을 사랑하면서도 여름에 취약하다. 대부분의 상처는 여름에 생겼음을 알아냈다. 철저하게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모든 감정이 희미해졌으면 좋겠다. 왜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계절에 떠날까. 혹은 떠나보내야만 할까. 이 답을 찾기 위해 몇 번의 계절이 필요할까. 오늘도 질문만 한가득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