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최고의 선물
"편안하고 깨끗한 집에서 쉬는 행복을 선물해주고 싶었어."
이사한 이후에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없어 대충 살 만큼만 집을 정리하고 방치해 뒀었다. 집을 꾸미려고 했던 건 둘째 치고 공간 배치가 답이 안 나와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제 퇴근하고 늦게 집에 도착했는데 서프라이즈가 이런 건가 싶었다. 신발장 앞에 정리되지 않은 신발들과 갖다버려야 할 박스들을 내놓았는데 들어오면서부터 너무 휑했다. 앞을 보니 집 안의 가구들과 물건들이 마치 늘 있을 곳에 있었다는 듯이 정갈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보아도 집을 잘 못 들어온 건 아닐 테니 너무 놀라 신발장에서 연신 감탄사만 내뱉었다. 언니가 내가 집을 비우는 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절감했는지 우렁각시 놀이를 하고 갔다. 물론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었겠지만. 수납장 안부터 부엌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설거지, 빨래, 거실, 침실 정리를 다 해놨다. 냉장고도 가득 채워 놓고 심지어 나의 반려 식물 올리브나무에도 물까지 주었다. 어디에 뭐가 있고 어떻게 정리했는지 포스트잇에 써 붙여놓고 따듯한 말의 집합체인 손편지까지 남겼다.
더 놀라운 건 언니가 오늘 퇴근길에 데리러 와서 함께 장을 보고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해준다고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다. 나의 꿈의 여인, 우렁각시 현실판이다. 동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이 나의 친언니라니. 지난 생에 덕을 많이 쌓은 건지 이번 생에 천운을 끌어다 썼나 보다. 나 같은 동생 있으면 나는 독립하자마자 생사만 확인하고 지냈을 텐데.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 중인가 보다. 힘이 없던 일상에 다시 한번 전환점이 생겼다. 언니는 늘 한결같았지만 나는 미련하게 그것을 아주 드물게 한 번씩만 깨닫는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은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기분 좋은 금요일 밤을 보낸다. 양파와 버섯 구운 냄새가 둥글둥글 굴러서 코끝을 자극하고 이어서 한우 채끝 등심이 그윽한 빛깔과 향으로 나를 유혹한다. 파스타까지 기다리고 있다. 침을 꼴딱 삼킨다. 언니가 주려는 행복을 온전하게, 완전하게 잘 받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의 품에서 따듯하고 행복하다.